입력 2020.07.11 05:00
집을 샀다. 서른아홉이던 2017년이었다.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내가 산 집은 재산을 몇 배로 불려 줄지도 모를 아파트가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자연과 마주할 수 있는 통창과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도 아니다. 방 두 칸에 화장실 하나, 거실과 부엌, 다용도실이 딸린, 그나마 '편세권'(편의점과 역세권을 합친 합성어)에 위치한 서울 은평구의 작은 빌라 한 채다.
그래도 홀가분하기는 했다. 나이 든 어머니가 더는 이사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 그래서 내 마음이 불편할 일도 없다는 것. 무엇보다 그 작은 빌라 하나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고민과 소동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게 좋았다.
평균임금 생활자가 집을 샀다는 건 곧 대출을 받았다는 뜻이다.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간 원리금 상환 금액을 볼 때면 집을 보러 다니던 그때가 기억났다. 나와 어머니를 차에 태워 '빌라 관광'을 시켜 준 중개업자들, 신축 빌라 분양 사무소에서 만난 실장님들과 그들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실제로 분양업자와 집값을 놓고 흥정을 벌였던 상황을 영화처럼 머릿속에서 다시 돌려 보기도 했고, 계약금까지 다 치른 마당에 다른 집을 사는 게 좋겠다며 나를 허탈하게 만든 어머니가 다시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 모든 이야기를 글로 기록해 놓으면 어떨까 싶었다. 대한민국에는 아파트보다 빌라에 사는 사람이 더 많은데, 서점에서 빌라 실거주자를 위한 책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도 글을 쓴 이유다. 왜 아파트를 사지 않고 빌라를 샀느냐 묻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구구절절한 대답이기도 하다.
생애 최초로 집을 구입한다는 것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대형 사건이다. 어렵게 저축해 모은 돈에 불안한 마음으로 받은 대출금까지 보태 첫 집을 사려는 이들에게 내 책 '생애최초 주택구입 표류기'(북라이프)가 잠깐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July 11, 2020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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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말한다] 생애 최초 주택구입 표류기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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