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反中투사' 지미라이

그동안 중국을 거세게 비판해온 그는 홍콩보안법이 시행될 때부터 체포 1순위로 꼽혀왔다. 법 시행 전인 6월 18일 AFP통신 인터뷰에서 "감옥에 갈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삶의 이력이 저항 의지의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라이 회장은 1948년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화물선 6척을 가진 부유한 집안이었다고 한다. 1948년 광저우가 공산화되면서 부친은 홍콩으로 피신하고 어머니는 '노동 개조(사상 개조 목적으로 노역시키는 것)'에 보내졌다. 라이 회장은 5세 때부터 쓰레기를 주워 입에 풀칠했고, 암시장에서 라이터를 팔거나 광저우 기차역 앞에서 짐을 날랐다고 한다.

기업인이었던 그가 정치에 눈을 뜬 계기는 19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였다. 베이징 천안문에서 정치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군이 총을 쏘자 홍콩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그도 '내려오라. 우리는 분노했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만들어 시위대에 나눠줬다. 1990년에는 잡지를 발행하며 언론 사업에 뛰어들었다. 리펑 당시 중국 총리를 비난하는 글을 실었다가 중국에서 의류 사업이 어려워지자 지오다노를 매각했다. "장사꾼은 정권에 맞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언론에 '올인'하게 된 계기라고 한다. 1995년 빈과일보를 창간해 "아시아의 루퍼트 머독(월스트리트저널 등을 보유한 언론 재벌)"이라고 불렸다.
라이 회장은 홍콩 야당과 시민 단체를 후원해왔다. 중국 정부가 그를 "반중(反中) 세력의 돈줄"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2014년과 2019년 홍콩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 때는 시위대 맨 앞줄에 섰다. 스스로를 "트러블 메이커(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라고 부르는 그는 지면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판했다. 지난해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등을 만나 홍콩 문제를 논의했다.
라이 회장 체포를 계기로 지지자들은 빈과일보 지지 캠페인을 벌이고 회사 주식을 샀다. 하지만 신문 모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1% 감소하고 영업 적자는 23% 가까이 늘었다. 반중 성향 때문에 기업들이 광고를 꺼리면서 신문 1면에 성인용품 광고를 싣고 있다. 홍콩보안법 수사 결과에 따라 회사 자산이 압류되고 막대한 벌금을 물 수도 있다.
라이 회장은 보 석으로 풀려난 뒤 12일(현지 시각) 영국 BBC 인터뷰에서 "구속돼 있는 동안 '이런 시련이 닥칠 줄 미리 알았더라도 민주화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봤다.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결론이었다"고 했다. 13일 미 헤리티지재단이 주최한 온라인 세미나 연설에서도 "우리가 (중국을) 바꾸지 않는다면 세계 평화는 없다"고 했다.
August 14,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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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 갔다와도… 反中 언론사주 "내 선택 안 바꾼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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