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을 주름 잡았던 말들은 은퇴하고도 세계 각지에서 교배용 종마(種馬)로 데려가려고 러브 콜을 받는다. 유명 씨수말 한 마리가 연간 500억원의 교배료 수익을 창출해 씨수말의 정액 한 방울은 다이아몬드 1캐럿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제 값비싼 종마를 사지 않고도 어느 곳에서도 세계 최고의 경주마를 번식할 수 있게 됐다. 평범한 말도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하면 종마의 정자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궁을 빌려주는 대리모(代理母)처럼, 다른 수컷의 정자를 대신 생산하는 대리부(代理父)가 탄생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의 존 오틀리 교수 연구진은 15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영국 로슬린연구소와 함께 돼지와 염소, 소, 생쥐를 대상으로 유전자 기술을 적용해 다른 수컷의 정자를 생산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와 줄기세포 이용
이에 따라 저개발국가의 축산 농가에서도 선진국에서 최고상을 받은 소와 말, 돼지를 번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오틀리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로 세계적인 식량 불안정 문제를 유전자 기술로 해결해 물과 사료, 항생제를 덜 쓰는 우수한 가축을 어느 곳에서도 키울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과학계는 멸종 위기에 있는 동물을 복원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연구진은 먼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염소나 돼지, 쥐, 소의 수컷에서 정자를 만드는 NANOS2 유전자의 기능을 차단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유전물질인 DNA에서 원하는 부분을 잘라내고 바꿀 수 있는 효소 단백질이다. 이제 수컷들은 정자를 생산하지 못하게 됐다.
다음은 유전자 가위 시술을 받은 어린 수컷들에게 다른 수컷의 정자 줄기세포를 주입했다. 수컷들이 성숙하자 줄기세포를 제공한 다른 수컷의 정자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대리부가 된 것이다.
◇멸종위기 동물 복원에도 도움 줄 듯
대리부와 암컷이 짝짓기를 해서 태어난 2세들은 건강했다고 연구진은 밝혀다. 한 대리부 생쥐는 짝짓기를 통해 새끼 111마리를 탄생시켰다. 영국 에딘버러대 로슬린 연구소의 브루스 화이트로 교수는 “이제 이 기술을 이용해 급증하는 인구에게 필요한 식량을 효과적으로 공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 기술이 멸종 위기 동물을 복원하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냉동 보관된 멸종 위기 코뿔소의 정자를 대리부 코뿔소의 생식 세포에 넣어 개체수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가축이든 멸종 위기 동물이든 유전자 기술을 적용하려면 윤리적, 법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유전자를 교정해 뿔이 없는 소가 탄생했지만 아직 이런 가축은 식용으로 허가를 받지 못했다.
September 16, 2020 at 05:12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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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서 다른 수컷 정자가, 가축계에 '대리부'가 뜬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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