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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말한다] 식물 사진관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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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8.29 05:03

"이건 키우기 쉬워요. 얘들도 죽이면 그건 진짜 식물 싫어하는 거예요."

친한 플로리스트 선생님이 촬영 소품으로 썼던 홍콩야자 몇 포기를 주면서 말했다. 키울 자신이 없다고 망설이자 용기를 주려고 한 말이다. 그러나 집으로 데려온 홍콩야자는 모두 죽었다.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축 늘어져 누레지기 시작한 잎사귀, 돌덩이처럼 굳은 화분 속 흙을 보며 '내가 식물을 싫어하는 걸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 이 책 '식물 사진관'(아라크네)을 쓰고 있을 때였다. 책에는 식물에 대한 사랑을 속삭이면서 현실에선 이렇게나 신속하게 식물의 마지막을 맞이하다니. 식물에도 면목이 없고 책을 쓰는 나 자신에게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 나는 식물을 싫어하지 않는다. 정말 식물과 잘해 보고 싶다.

'식물 사진관'은 그런 심정으로 쓴 책이다. 식물을 잘 키워서 식물을 좋아하게 된 게 아니라, 어느 날 불쑥 식물 사진이 찍고 싶어졌고 사진을 찍으면서 식물에 빠져들었다. 다양한 식물을 찬찬히 바라보며 정성껏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러면서 식물은 누구의 곁에나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둘 찍은 사진을 모으고 식물 이름을 찾아보며 얻은 정보도 정리해서 책이 되었다. 식물 키우는 솜씨가 확 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식물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

죽은 식물도 살려내는 '금손'이 아니라도 식물을 사랑할 수 있다. 책엔 그렇게 느릿느릿 식물과 친해지는 과정을 담았다. 나처럼 키우는 식물마다 다 죽여서 차마 식물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초보 동지들에게 다정한 책이었으면 좋겠다. 고수들에게 초보는 이런 마음이라는 것도 알려 주고 싶다. 식물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식물이 이렇게 우리와 가까이 있음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August 29, 2020 at 03:0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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