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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올해 정년…내 발로 공장 걸어나오고 싶어”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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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1 14:34 입력 2020.06.21 14: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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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0월1일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21살의 여성 용접공이 입사했다. 조선소의 유일한 여성 용접공이었다. 그는 “집채만한 철판을 잘라 뚝딱뚝딱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던 아저씨들이 하늘처럼 보였던 스물 한 살”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노조가 있었지만 동료 노동자들이 위험한 일터에서 다치고 죽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2011년 10월8일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8일 지지자들을 향해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정지윤기자

2011년 10월8일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8일 지지자들을 향해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정지윤기자

그는 이런 일터를 바꾸고 싶어 1986년 2월18일 노조 대의원이 됐다. 대의원 당선 직후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유인물(제23차 정기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 150여장을 동료 노동자와 함께 제작·배포했다는 이유로 같은해 5월20일부터 7월2일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부산시 경찰국 대공분실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조사 과정에서 온갖 고문도 당했다. 회사는 경찰 조사를 이유로 그를 징계해고했다.

“아저씨들과 쥐똥 섞인 쉰내 나는 도시락이 아닌 따뜻한 국이 있는 밥을 먹고 싶었고 다치면 치료받고 싶었고 감전사, 압착사, 추락사가 아니라 제 명대로 살고 싶었다.”

노동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꿈꿨지만 “이 꿈이 불온하고 불순해서 유배된 35년”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유배된 35년간 그는 해고자 신분으로 살아오면서 노동운동을 해왔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기 위해 309일간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였다. 노동계는 당시 그를 응원하기 위해 ‘희망버스’ 행사를 기획했고, 그해 6월11일 ‘1차 희망버스’에 탄 700여명이 부산 영도조선소를 찾았다. 그가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겪은 체험을 질박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문체에 담은 산문집 <소금꽃나무>도 당시 다시 주목받았다.

암 투병 중인 그는 지난해 말 해고자 복직과 노조파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던 친구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부산에서 대구 영남대병원까지 약 130㎞의 거리를 도보로 걷기도 했다.

해고되지 않고 그가 계속 한진중공업을 다녔다면 올해가 그의 정년이다. “‘숙에이~’ 부르시던 허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귀에 선한데 어느덧 그 아저씨들의 나이를 훌쩍 넘어 6개월 후면 정년이다.”

한진중공업의 마지막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60)이 35년간 미뤄진 복직을 위한 싸움에 나선다. 김 지도위원은 “스물 여섯 살. 검은 보자기에 덮어 씌운 채 눈매가 무섭던 낯선 남자들에게 대공분실로 끌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한 공장을 내 발로 걸어나오고 싶다”고 했다.

금속노조는 23일 오전 11시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서 김 지도위원, 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아래는 복직 투쟁에 나서는 김 지도위원이 쓴 글이다.

올해 정년을 맞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복직투쟁을 앞두고 자필로 쓴 문서. 금속노조 제공

올해 정년을 맞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복직투쟁을 앞두고 자필로 쓴 문서. 금속노조 제공
집채만한 철판을 잘라 뚝딱뚝딱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던 아저씨들이 하늘처럼 보였던 스물 한 살.

“숙에이~” 부르시던 허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귀에 선한데 어느덧 그 아저씨들의 나이를 훌쩍 넘어 6개월 후면 정년입니다.

철판에 다리가 깔려 입원했을 때 주전자에 죽을 끓여오셨던 아저씨들.

‘용두산 에레지’를 구성지게 부르시던 강씨 아저씨.

해고된 후 어용노조 간부들, 관리자들,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짓밟히는 나를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오지도 못하고 눈물이 가득 고였던 아저씨.

그 아저씨들과 쥐똥 섞인 쉰내 나는 도시락이 아닌 따뜻한 국이 있는 밥을 먹고 싶었고 다치면 치료받고 싶었고 감전사, 압착사, 추락사가 아니라 제 명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 꿈이 불온하고 불순해서 유배된 35년.

내일이라도 부르면 달려와야 하니까 멀리 가지도 못하고 책임있는 자리도 애써 피해왔던 35년.

스물 여섯 살. 검은 보자기에 덮어 씌운 채 눈매가 무섭던 낯선 남자들에게 대공분실로 끌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한 공장을 내 발로 걸어나오고 싶습니다.

감옥에 끌려간 채 시신으로 돌아온 박창수 위원장이 그렇게 돌아오고 싶었던 곳. 김주익 지회장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그토록 내려오고 싶었던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박창수 위원장도, 김주익 지회장도, 재규 형도, 강서도, 금식씨도, 상규 형도,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무 죄 없이 또 다시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조합원들 곁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게 돼서 다행입니다.

회사가 어려우면 경영진이 먼저 책임져야 합니다.

그 책임의 순서가 잘못돼 너무 많은 것을 잃은 곳이 한진중공업입니다.

다시 또 그 어리석은 길로 들어서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June 21, 2020 at 12:34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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