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리포트 과제로 시험을 대체하는 과목이 많아지면서 참고용으로 몇 번 다운로드 받아봤어요.” 서울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A씨는 코로나19 전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던 리포트 거래 사이트에 접속했다고 한다. “혹시나 모를 ‘표절’이 신경 쓰이지는 않냐”고 묻자 “‘카피킬러’ 등의 표절 검사사이트를 통해 표절률도 확인하고, 다른 책도 참고하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적은 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 같은 경우는 ‘바람직한 케이스’라고 생각될 정도로 심각도가 낮은 수준이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에는 “○○교수님은 논문 3개 정도 짜깁기하면 모른다” 등의 정보가 오가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자료가 2·3차 가공 후 작성된 리포트일 가능성도 있고, 원저작자인 석·박사 연구자와 책의 원저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수없이 재가공한 리포트로 상업적 수익을 올리는 측은 논문 재가공자와 리포트 거래 플랫폼이지 연구자들이 아니다. ‘표절’이 범죄로 여겨지고 ‘지적 재산권’의 중요도가 올라갔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민간 데이터베이스(DB) 업체를 통해 상업적으로 유통되고, 나아가 무차별적으로 저작권도 무시된 채 퍼져나가 상황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 학회지에 낸 글, 버젓이 ‘거래 사이트’에서 유통된다=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단체와 연구자 연대’를 목표로 하는 지식공유연대는 이런 현실에 맞서 오픈액세스(OA, Open Access) 운동에 나섰다. 6월 15일 <해피캠퍼스 등 리포트 거래 사이트의 학술논문 거래 실태 개선 촉구와 지식공유운동 확산을 위한 연구자 연대 선언>을 통해 연구자들의 연대를 만들어나가는 중이다. 6월 26일 기준으로 727명이 넘는 연구자가 동참했다.
이들이 지적하는 부분은 ‘논문 유통 과정’이다. 교수를 비롯한 석·박사 연구자들이 학회 저널에 논문을 내게 되면 학회는 연구자에게 저작권을 양도받는 동의서와 원본을 받는다. 그렇게 학회에 속하게 된 연구자의 논문은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나 한국학술인용색인(KCI)에서도 볼 수 있지만, 민간 DB 업체(플랫폼)인 누리미디어(DBpia), 한국학술정보(KISS)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논문이 지식 공공재로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취지에서 학회가 저작권료를 받고 판매하기 때문이다.
‘지식의 공공 가치’를 말하지만, ‘공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일반 사용자는 논문을 보기 위해서는 적게는 1000원부터 많게는 6000원 이상의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지식공유연대 공동회장)는 "연구자들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천 교수는 “학회가 거래한 논문만 팔리는 게 아니다”라며 정식 발간도 전인 학술대회 발표문과 토론문도 유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천 교수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학회가 무차별하게 포괄적으로, 문제의식 없이, 독점 계약으로 민간 DB 플랫폼에 자료를 넘겨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학회들이 대단한 수익을 올리고자 거래에 나섰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안타깝기도 하다”고 말하며 “사회적 공공재라고도 볼 수 있는 지식이 천민자본주의 논리에 의해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런 의견에 동의한 많은 학회(한국문헌정보학회, 대중서사학회, 상허학회, 기록관리학회, 한국여성문학회 등)가 현재의 논문 유통구조에 반대하며 민간 DB 플랫폼과 계약을 해지하거나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 DB 플랫폼 권한 강화하는 수정 계약 문구= 박숙자 서강대 교수는 “한국의 학술지식이 대중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논문을 알릴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했고, 연구자들과 학회도 지식의 대중적 보급이 더 중요했기에 이때까지 계약을 이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논문 거래 플랫폼들이 초창기와 다르게 수익을 위해 학회와 맺는 계약서도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회 토론회에서 박 교수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DB 플랫폼 D사가 제시한 2019년 계약조건에는 이전(2012년) 계약과 달리 ‘원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2차 콘텐츠로 제작할 가능성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DB의 독점 권한이 강화되는 수정 문구들이 보였다.
지식공유연대는 저작권 양도와 관계없이 저자가 저작자의 주체임을 강조했다. 지식공유연대는 연대 선언문에 “연구자는 게재될 논문의 유통과 그에 대한 경제적 권리인 ‘저작 재산권’만을 편의상 학회에 양도한 것일 뿐, 법적으로 양도와 상속이 불가능한 ‘저작 인격권’이나 학회지에 게재되지 않은 토론문 등의 다른 글까지 양도한 것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지식공유연대는 7월 17일에는 공청회와 발족식을 가지고 OA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이어나갈 계획이다.
■ ‘표절’에 책임 없다는 리포트 거래 플랫폼= 한 연구자는 “오픈 소스로 공개한 자료가 리포트 거래 사이트에서 공유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내 논문’을 내가 수수료까지 들여서 다운로드받는 일이 생겼다”며 어이없어했다. 선의로 공개한 연구 자료가 타인의 주머니만 두둑하게 만들어준 셈이다.
물론 저작권 신고도 가능하다. 원저작자임을 증명하는 자료와 양식을 제출하면 저작권을 침해한 해당 자료는 판매가 중단된다. 하지만 저작권을 침해한 판매자의 정보를 리포트 거래 플랫폼을 통해서 바로 알 수도 없다. 한 리포트 거래 플랫폼은 “명예훼손 분쟁조정부의 요청에 따라서만 판매자의 최소한의 정보(성명, 주소 등)만 제공할 수 있다”고 고지해 해당 플랫폼에는 책임이 없다고 고지하고 있다.
더불어 리포트 거래 플랫폼의 책임한계와 법적고지 페이지를 봐도 철저히 책임을 피하고 있다. 약관 및 정책 페이지에는 “(지식포탈) 서비스를 통해 제공되는 정보는 해당 정보가 포함하고 있는 객관적인 내용만을 발췌해 제공하는 것일 뿐”이며 “다른 정보의 불법 내지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정보가 게재(또는 수록)돼 있더라도 회사는 이와 관련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이에 지식공유연대는 “리포트 거래 사이트가 대학생들의 리포트 표절을 조장하고 있다”며 이를 탈법적이고 반사회적인 지식거래라고 규탄했다.
■ 공공 플랫폼 강화와 OA인식 확대로 이루는 지식공유 사회= 그렇다면 어떻게 건강한 지식 전파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박배균 서울대 교수(지식공유연대 공동회장)는 먼저 지식이 사유화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공재라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공공재를 만들기 위해 국가의 균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기존에도 학술지 지원사업을 연구재단에서 하고 있지만, 학술지의 수월성에만 입각해 일부에만 수혜를 주고 있다”고 보고, “그렇게 연구재단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지식이 민간 DB 플랫폼에 판매되어 사유화되는 관행을 끊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OA 정신으로 연구하는 학회지를 더 지원하고, 학회들이 골고루 지원사업금을 받을 방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두 번째로 공공 기관이 경쟁력 있는 ‘공공 DB 플랫폼’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다. 민간 DB 기업은 가시성과 이용 편리성을 갖춘 사용자 ‘프렌들리 플랫폼’이지만, 현재 공공 DB 플랫폼은 그렇지 못하다는 평이 많다.
박 교수는 나아가 “지식 생산자들인 연구자들과 학술단체들이 중심이 된 OA 플랫폼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우선 한국대학도서관과 학술정보 공유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도록 했다. 연구재단의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논문 데이터를 전국 327개 대학도서관에서 연계해 볼 수 있게 돼 사용자의 편리성을 높였다. 박 교수는 “논문을 이용할 때 도서관이나 학교를 이용해 최대한 공공 플랫폼을 통해서 접근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천 교수는 “지금도 지식공유연대의 연대 서명은 온라인을 통해 계속 받고 있다”며 “연구자 스스로가 비정상적인 학술 연구 유통 구조에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OA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바람도 비쳤다.
June 27, 2020 at 01:51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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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논문을 판 적이 없는데...” 지식은 공공재, 'OA 운동' 이어져 -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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