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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주의 직장생활, 나만 힘들어?
“현주야, 너 결혼하니?” 몇 년 전, 회사 정수기 앞에서 물을 마시는데 한 선배가 물었다. 순간 놀라 물을 뿜을 뻔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어느 혼수 가게에서 너를 봤다느니, 예식장을 알아보고 다닌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결혼의 ‘기역 자’도 염두에 두지 않을 때라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며 웃고 넘겼다. 근거 없는 결혼 소문은 몇 년 뒤 또 돌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였다. 어느 날 친한 동기 A가 평소와 다른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을 뱅뱅 돌렸다. “현주야, 우리 친하니까…. 누가 너에 대해서 이런 질문 하면 확실하게 대응해주고 싶어서 묻는 건데….” “무슨 이야기인데, 속 시원하게 말해봐.” 소문에 관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지만,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한 마음에 심장이 콩닥거렸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듣는데, 내용은 이랬다. 수년 전, 한 회사를 다니고 있던 내가 당시 지금 회사의 민감한 이슈였던 ‘어느 시험’을 쳤고, 그땐 떨어졌지만 결국 이듬해 공채로 입사했다는 것이었다. 언뜻 들어서는 그게 무슨 문제인가 싶은데, 만약 내가 진짜 그 시험을 봤다면 그간 회사의 여러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나는 ‘기회주의자’ 혹은 ‘이중적인 사람’이라는 모함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닌데. 지원한 적도 없는데.” 내 대답은 간결했다. 이렇게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건데 ‘그냥 나한테 직접 물어보지. 그걸 왜 너한테 묻는다니?’ 하는 마음에 누군가는 나를 색안경 끼고 봤을 거란 생각이 더해져서 속상했다. 이후에도 다른 선배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렇게 물어봐 주니 차라리 낫다 싶으면서도 힘이 쭉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선배는 나와 같이 시험을 봤다는 사람의 목격담까지 들었다고 했다. 지원서도 안 냈는데 시험장에서 나를 만났다는 구체적인 후기까지 만들어지다니. 마음 같아서는 소문의 출처를 알아내 있지도 않은 사실을 왜 만든 것이냐 따지고 싶었지만, 일일이 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소모될 내 감정과 시간, 에너지가 아까웠다. 게다가 여기는 직장 아닌가? 누구든 크고 작은 소문에 시달릴 수 있다. 좋든 싫든 앞으로 몇 년을, 길게는 몇십년을 복작복작 얽히고설켜 지내야 할 곳이기에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게 그다지 현명한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 근거 없는 소문에 대처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바로 ‘소문의 정도를 가늠해 내게 미치는 득과 실을 따져 대처하는 것’. 소문이 나의 커리어와 일에 치명적으로 해가 되는 것이라면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간혹 성희롱에 해당하는 소문인데도, 일이 괜히 커질까 봐 망설이는 경우가 있는데, 회사의 제도와 원칙을 빌려 확실하게 응징해주는 게 옳다. 예전에 들은 소문의 경우, 나에게 흠집을 낼 수 있는 유언비어이긴 했지만 조금 더 크게 본다면 일부 뒷담화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십거리 수준이었다. 관심 없는 사람도 다수인, 그러니 당장 대처하기보다 나중에 가시화될 때 확실히 대처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소문을 만든 사람의 뒤틀린 심보에 일일이 대응해 내 에너지를 헛되게 쓰느니 ‘가볍게 즈려밟고(지르밟고) 간다’고 생각했다. 만일 누군가 나를 오해할 거란 스트레스 때문에 마냥 ‘쿨’해질 수 없다면, ‘관계의 문제’로 생각해본다. 유언비어를 말하고 전하는 사람 중에 나와 진짜로 가까운 사람이 얼마나 될지, 그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고 나를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과 인간적으로 친해질 확률은 얼마나 될지. 소문만 믿고 단정 짓는 사람이라면 인연은 딱 거기까지니 애써 나를 해명하고 이해시키려고 진을 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소문에 휘둘리라는 말이냐? 그건 아니다. 일단 소문의 진위를 직접 묻는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그리고 또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한 이야기를 확실히 전해 달라고 덧붙인다. 방송국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선배는 내게 “직장은 말 공장”이라고 말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직장생활에서 자리에 없는 제삼자 이야기가 나오는 걸 어찌 막으랴. 이런 ‘말 공장’에서 자신의 신뢰도와 인격을 위해 기억할 것은 딱 두 가지다. 누군가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들릴 때 말을 아끼는 것과 나의 태도를 확실히 밝히는 것. 칭찬이라면 얼마든지 나누어도 좋지만, 다른 사람의 험담에는 맞장구치지 않아야 한다. 직접 경험하고 들은 바가 아니라면 부풀려지거나 왜곡되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들은 이야기는 다시 누군가에게 전하지 않는 것으로 전파를 끊는다. 마지막으로 내가 직접 겪고 확인하기 전까지는 상대를 쉽게 평가하지 않겠다고 되새긴다. 이렇게 잘 해내고 있는 당신이라면 아마도 주위에서 인격적으로 칭송받는 사람일 것이다. 칭송받을 만한 주변 사람을 떠올리니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제삼자에 대한 소문을 들은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인데?” 상대에 대한 판단은 내가 한다는 강단, 소문을 불식시키는 동시에 이야기를 전한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최고의 대화 스킬 아니겠는가.
임현주(MBC 아나운서)
June 18, 2020 at 07:26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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