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 농촌마을서 분쟁
사유지 내세워 논밭 통로 막아
인근 농가 먼 길로 돌아가거나 일부는 아예 농사 포기하기도
통행권 보장 요구 소송 걸면 법원 ‘소유권 우선’ 판결 내려
분쟁 조정프로그램 등 대책 필요
광주광역시 남구 이장동에서 벼농사를 짓는 오기영씨(71)는 수년 전 겪었던 일로 여전히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4년 전 매일 오가던 농로가 갑작스럽게 막혀버려서다. 알고 보니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바로 옆 야산 농장주가 “농로 일부가 자신의 사유지”라며 인근 논밭을 지나는 유일한 통로를 막아버린 것이다.
오씨는 “농장주와 수차례 대화를 해보려고 노력했으나 허사였다”면서 “버스정류장에서 걸어서 5분이면 갈 논을 20분 넘게 빙빙 돌아가야 하니 농사일하기 전부터 진이 빠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논밭 출입로가 막히자 아예 농사를 포기한 농가도 있다. 6610㎡(2000평) 규모로 이곳에서 배농사를 준비하던 귀농인 이준희씨(54)는 각종 농기계와 농자재를 옮길 방법이 사실상 사라지자 아예 땅을 팔려고 내놨다. 이씨는 “농로가 막히다보니 땅을 보러온 사람들도 구입을 꺼리기 일쑤”라면서 “전원생활의 부푼 꿈을 가지고 귀농했는데 농로가 막혀 이렇게 농사를 포기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동사무소에도 민원을 넣어보고 소송도 알아봤지만 해결할 길을 찾기가 불가능해 보였다”면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관심을 두고 지역주민간 분쟁을 해결할 분쟁 조정프로그램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사유지에 속한 농로로 인한 갈등은 비단 이곳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 곳곳의 농촌마을에서 농로 소유주와 주민간 크고 작은 분쟁이 적잖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의 한 농촌마을 주민들도 농로 갈등을 겪고 있다. 수십년 동안 주민 30여명이 이용하던 폭 3m 농로가 어느 날 갑자기 막혀버려서다. 지난해 농로를 포함한 일대 661㎡(200평) 임야를 구입한 소유주가 권리를 주장하면서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
주민들은 통행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난해 소유주를 상대로 형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법원은 소유권 우선을 확인하며 소유주 손을 들어줬다. 대신 차량 1대 지날 수 있는 폭 2m 통행로는 허용하라는 중재안도 제시했다. 그렇지만 농로 소유주는 장애물 등을 농로에 설치하면서 여전히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다.
마을주민 손계율씨(78)는 “수십년간 사용하던 농로를 개인 소유권 우선이라는 법의 잣대로 막으면 농촌에서 어떻게 계속 살 수 있겠냐”며 “주민 통행권 보장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시 오산면 장신리 주민 30여명도 농로 갈등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평소 논밭 일을 하러 다니던 농로가 사유지였는데, 그 땅 소유주인 외지인이 농로를 포함한 부지에 주택을 짓겠다며 진출입을 막겠다는 현수막을 내걸면서부터다. 마을주민들은 “폭 2m, 길이 10여m의 농로를 100년 가까이 도로 겸 농로로 이용했는데, 이곳이 막힌다면 앞으로 농사일을 하기 위해선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땅 소유주는 해당 농로에 대해 출입을 금하고 불이행 때 법적 책임도 묻겠다는 강경한 태도여서 문제 해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농촌마을도 농로 소유주가 농로 한가운데에 대형 철문과 컨테이너를 설치해 마을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만 사유지 내 도로 이용을 놓고 80여곳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광주=이문수, 용인=유건연, 익산=황의성, 제주=김재욱 기자
July 19, 2020 at 10: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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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땅이니 돌아가시오”…토지주·주민 '농로' 갈등 -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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